안호상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9-06-11 17:47
조회
383
집안 어른인 홍문각 교리를 역임한 항일운동가 안효제(安孝濟)와 독립운동가이자 실업가인 안희제(安熙濟)의 뜻에 따라 신학문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19년서울로 올라와 중동중학을 다니면서 대종교에 입교하여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민족의 사상을 연구하는 일에 뜻을 두었다.
1922년에는 상해에 가서 독일국립동제대학(獨逸國立同濟大學)에 재학중 김구·안창호·신채호·이시영·전진한·조소앙·이동녕 등 민족지도자들과 만나면서 영향을 받았으며,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상해 한인 유학생회를 이끌기도 하였다.
조국 독립을 위해서는 보다 장기적인 계획과 준비가 필요함을 절감하고 독일 유학을 결행, 1929년에는 독일 국립 예나(Jena)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 개천절에는 민족통일을 위한 교류의 물꼬를 트기 위해 정부의 허가 없이 방북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법처리를 당함으로써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71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고, 1974년에는 독일연방공화국 최고십자훈장, 1991년 세계한민족평화상, 1994년에는 대한민국무궁화훈장을 받았으며, 1999년 2월 숙환으로 별세하자 사직공원에서 사회장으로 추모되어 동작동 국립묘지 제일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1922년에는 상해에 가서 독일국립동제대학(獨逸國立同濟大學)에 재학중 김구·안창호·신채호·이시영·전진한·조소앙·이동녕 등 민족지도자들과 만나면서 영향을 받았으며,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상해 한인 유학생회를 이끌기도 하였다.
조국 독립을 위해서는 보다 장기적인 계획과 준비가 필요함을 절감하고 독일 유학을 결행, 1929년에는 독일 국립 예나(Jena)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 개천절에는 민족통일을 위한 교류의 물꼬를 트기 위해 정부의 허가 없이 방북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법처리를 당함으로써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71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고, 1974년에는 독일연방공화국 최고십자훈장, 1991년 세계한민족평화상, 1994년에는 대한민국무궁화훈장을 받았으며, 1999년 2월 숙환으로 별세하자 사직공원에서 사회장으로 추모되어 동작동 국립묘지 제일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